# 강남에 2주택을 보유해 부동산 세금 부담이 늘어난 자산가 A씨는 최근 캘리포니아 어바인 주택을 구입하고자 미국을 방문했다. 7·10 대책 이후 종부세가 억 단위로 뛰자 미국 방문 후 2주간 격리를 각오하고 미국행을 택한 것이다.
캘리포니아의 중산층 주거지로 선호되는 어바인에서 쾌적한 환경의 50평대(전용면적 130~140㎡)의 새 집이 80만~100만달러(약 9억~15억원) 수준으로 강남 아파트보다 저렴했다. 가장 마음에 드는 85만달러 집을 계약하기로 결심했다.
A씨는 매입 가격의 40%는 한국에서 송금하고, 60%는 미국 현지에서 대출을 받기로 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A씨는 평소에 자주 이용하는 국내 은행에서 미국 부동산 취득 목적으로 계약금 3%를 송금했다. 이어 이메일을 통해 에스크로(Escrow) 오픈 서류에 서명하고, 대출 관련 서류를 작성해 우편으로 전달했다. 과정마다 현지 에이전트가 안내를 했다.
A씨가 미국 현지 대출을 받은 후 이 부분을 제외한 잔금을 송금하자 매매가 완료됐다. 그 후 지정거래외국환은행에 ‘해외부동산 취득보고서’를 제출했다. 에이전트 도움으로 현지에서 세입자도 구해 월 3700달러 월세를 받고 있다.
7·10 부동산대책으로 다주택자를 겨냥한 세금폭탄이 본격화하면서 A씨처럼 해외 부동산으로 눈을 돌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특히 미국은 취득세와 종합부동산세가 없으며 매수자의 주택 보유수와 상관없이 부동산 세금을 매기고 있어 국내 부동산 투자자들에게 좋은 대안으로 떠올랐다.
29일 글로벌 부동산 전문기업인 리맥스 메가그룹에 따르면 7·10대책 이후 국내 은행·증권 PB를 통해 미국 부동산 투자 문의가 크게 늘어났다. 어태수 리맥스 메가그룹 부사장은 “7월 10일 전에는 일주일에 평균 20건 정도 문의가 왔는데 현재는 매일 10~20건씩 문의가 들어온다”며 “특히 다주택자 세금중과를 피하기 위해 현재 보유한 국내 아파트를 매도한 후 양도소득세를 납부하고 남은 금액으로 미국 부동산에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어 부사장은 “거래 완료는 매달 5~10건씩 이뤄지고 있다”며 “과거에는 유학생 자녀를 둔 부모들이 주로 매입했는데, 최근 유학생 자녀 등 미국에 연고가 전혀 없는 한국 고객들의 매입 비중도 높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7·10대책으로 국내 다주택자의 주택 취득세·종부세·양도세가 모두 강화됐다. 취득세율은 최대 1~4%였던 것이 최대 12%까지 상향됐고, 종부세율은 0.6~3.2% 수준에서 1.2~6.0%로 상향조정됐다. 또 양도소득 기본세율에 추가되는 중과세율 규제지역 2주택자는 10%포인트에서 20%포인트, 3주택자는 20%포인트에서 30%포인트까지 올라갔다.
반면 미국은 다주택자라도 추가 세금부담이 없다. 무주택자가 첫 집을 매입하나 3주택자가 네 번째 주택을 매입하나 적용되는 세금이 똑같다. 다만 캘리포니아 지역 부동산 보유세는 1.05~1.2% 수준이다. 미국은 실제 시세를 기준으로 매기기 때문에 보유세가 비교적 높은 편이지만 한국 같은 종합부동산세는 없다.
코로나19가 해외 부동산 투자에 걸림돌이다. 코로나19로 해외 현지실사가 힘들기 때문이다. 한국과 미국, 양국에서 각 2주씩 자가격리 절차를 거쳐야 하므로 쉽지 않다. 하지만 국내 강남 아파트값이 최근 3년 새 급등한 반면 코로나19로 해외 부동산 가격이 주춤하자 저가 매수 기회로 보고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규제 대상인 다주택자들의 미국 부동산 쇼핑이 늘어나는 추세다. 이를 반영해 글로벌 부동산 정보업체 ‘나이트프랭크코리아’에서는 국내 개인자산가를 위한 해외 부동산 컨설팅 부서를 신설했다. 그간 기관투자자 컨설팅에 주력해 온 회사 내에 개인자산관리(PWM) 부서를 작년 7월 신설했다. 개인 자산가들의 관심이 국내에서 해외로 옮겨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최준영 나이트프랭크코리아 전무는 최근 해외 부동산을 향한 자산가들의 관심이 크게 늘었다고 설명했다. 최 전무는 “작년부터 개인 자산가뿐 아니라 시중은행 2곳에서 컨설팅 문의가 들어와 업무협약(MOU)을 맺은 상태”라며 “올해 초 코로나19로 잠시 주춤하더니 하반기 이후 다시 문의가 늘어났다”고 말했다.
▶다주택자 추가적인 세금 부담 없어
미국 부동산의 가장 큰 매력은 매수자가 다주택자라도 추가적인 세금 부담이 없다는 점이다. 미국은 국내와 달리 취득세와 종합부동세도 없다.
국내의 서울 집값과 비교하면 미국 집값이 저렴하게 느껴지는 점도 강점이다. 미국 부동산 정보업체 질로우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8월 말 기준 뉴욕 주택의 중위값(한 줄 세웠을 때 중간에 위치한 값)은 65만4683달러(약 7억6709만원)이고, LA 주택의 중위값은 76만4528달러(약 8억9579만원)다. 반면 KA부동산에 따르면 8월 서울 아파트의 중위값은 9억2151만원에 달한다. 중위값만 놓고 보면 서울 집값이 미국 주요 도시 집값보다 더 비싼 셈이다. 미국에서는 대출 규제도 덜하다는 점도 눈에 띈다. 외국인이 미국 부동산을 살 때 대출을 주택담보인정비율(LTV) 최대 65%까지 가능하다. 물론 수백만달러 이상의 고가 주택을 살 때는 LTV가 다소 줄어들 수 있다. 그러나 A씨처럼 100만 달러 이하의 주택을 살 때는 LTV 최대 65% 정도 가능하다.
반면 서울에서는 대출규제가 엄격하다. 2018년 9·13대책 이후 다주택자는 투기·투기과열·조정대상지역(규제지역)에서는 아예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없다. 다주택자는 LTV가 0인 셈이다.
무주택자라도 서울 같은 규제지역에서는 대출규제를 적용받는다. 9억원 이하분까지는 LTV 40%를 적용하지만 9억원 초과분은 LTV를 20%까지만 설정해준다.
A씨처럼 85만달러(약 10억원)짜리 주택을 매입하는 경우 미국에서는 외국인도 6억원까지 대출이 나오지만, 서울 집이라면 무주택자는 3억8000만원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다.
해외 부동산 중에서도 미국이 거래안전도 확실한 편이다. 불법 외환거래의 일종인 ‘환치기(외국에서 빌려 쓴 외화를 불법 중개업자를 통해 국내에서 한화로 갚는 수법)’는 미국 부동산 투자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국내에서 미국 부동산 구입 자금을 송금할 때 해외 부동산 취득의 명목으로 송금이 되어야 하며, 부동산 매매대금을 송금한 지정은행에서 한국은행으로 대리신고를 하도록 돼있다.
미국 부동산 취득 후 2년마다 지정거래외국환은행에 보유 여부를 보고해야 한다. 또 미국 부동산에서 임대료 수익이 발생하면 미국에서 이에 대한 세금을 내고, 한국에서도 그 임대료에 대한 한국 세금과 미국 세금과의 차액을 내야한다.
▶세금 부담 회피처로 부상
이 같은 강점에 힘입어 국내 다주택자에게 미국 등 선진국 부동산이 ‘세금 폭탄’ 회피처로 부상하고 있다. 외국인이 미국 부동산을 매입하는 것이 여러모로 쉽지 않지만 다주택자 세금 폭탄에서 자유롭다는 장점이 단점을 상쇄하는 분위기다. 29일 매일경제신문이 미국 부동산 중개회사 네스트시커스의 곽용석 한국지사장에게 의뢰해 미국 캘리포니아·로스앤젤레스(LA)·베벌리힐스에서 주택을 구입할 때 각종 세금을 계산한 결과, 지난 7·10 부동산대책 이후 다주택자는 국내보다 미국 부동산 세금 부담이 덜한 것으로 집계됐다. 우선 미국에는 부동산 매매거래세인 취득세가 없다. 다만 주택을 구입할 때 수수료가 든다. 매매가의 대략 2~4%를 에스크로 비용, 감정평가비, 주택관리비 등으로 내야 한다. 캘리포니아 지역 부동산 보유세는 연 1.05~1.2% 수준이다. 한국처럼 보유세를 공시가격에 연동하지 않고 실제 시세를 기준으로 매기기 때문에 보유세가 비교적 높은 편이다. 그러나 매수자가 2주택이나 3주택을 소유해도 추가적으로 세율이 과중되는 종합부동산세는 없다. 따라서 다주택자가 베벌리힐스에서 35억원짜리 주택 2채를 구입·보유하면 연간 7700만원의 보유세만 내면 된다. 또 미국 부동산 보유세는 높은 수준이지만 보유세 인상 한도는 연 2%로 제한된다. 시세가 매년 10% 혹은 20%씩 올라도 보유세 과세 기준의 상승 폭은 최대 2%다. 100만달러 부동산을 소유하면 첫해에는 재산세가 약 1만달러 부과되지만, 10년이 지나서 시세가 200만달러가 돼도 재산세 부담이 약 20%만 늘어난다. 오랜 기간 거주할수록 보유세 부담이 낮아지는 셈이다.
소유기간이 늘어날수록 보유세 부담이 낮아지는 데다 추가로 주민발의안 60·90 (Proposition 60·90) 등을 통해 새로 구입한 부동산 가치로 재산정하지 않고 원래 거주하는 주택의 재산세를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세법도 재산세 부담을 크게 낮춰준다. 양도소득세는 해외투자자라면 양도에 따른 차액의 약 30% 안팎을 내야 한다. 미국인이 미국 주택을 팔 때보다 해외투자자에게 통상 높게 매긴다. 미국인은 미국 주택을 1년 미만 기간만 보유하고 팔면 양도소득세율이 10~37%, 1년 이상이면 0~20% 수준이다.
미국인이 미국 주택을 팔고 양도소득세를 낼 때 매매 시점 기준 5년 이내에 2년간 거주하면 부부 합산 50만달러까지 양도소득세를 면제해준다. 본인 거주 목적이 아니라 투자 목적의 부동산이라면 미국 세법 1031조항에 있는 ‘1031 부동산 교환(1031 Exchange)’을 이용해 양도차익이 발생한 부동산이라고 할지라도 세금을 이연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다. 100만달러의 투자용 부동산이 200만달러에 팔렸다면, 양도차익 100만달러에 대해 양도소득세를 내야 하지만, 매매 후 6개월 이내에 200만달러 이상 부동산에 재투자했다면, 양도소득세를 이연할 수 있다.
반면 국내 다주택자가 서울 최고가 아파트를 구입할 때 세금 부담이 얼마인지 매일경제신문이 우병탁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 세무팀장에게 의뢰해 계산했다. 서울 서초구 ‘아크로리버파크’ 전용면적 84㎡ 1채를 보유한 사람이 똑같은 주택을 또 구입해 2주택자인 것으로 가정했다. 이 주택의 시세는 35억원이고 올해 공시가격은 25억7400만원 수준이다. 두 번째 주택을 구입하기 위해서는 취득세로 2억9400만원을 내야 한다. 2주택자는 취득세가 8.4%에 달하기 때문이다.
2주택자가 되면 보유세도 만만치 않다. 내년 공시가격이 올해 공시가격의 10%만 오른다고 가정했다. 시세 35억원짜리 2채를 보유하면 내년 재산세 814만원과 종부세 1억3504만원을 내야 한다. 한국은 보유세가 낮다고 하지만 조세 산정의 중요 지표인 공시지가 상승률이 전국 기준으로 최근 3년 동안 약 21% 올랐고, 서울 지역은 이보다 훨씬 높은 상승률을 보여주고 있다. 또 3주택 이상, 조정대상지역 2주택은 과표기준 94억원을 초과하면 중과세율이 최고 6%에 달한다. 반면 미국에서는 특정 지역에 특정 금액 이상의, 또한 소유 주택 숫자와 세금의 개연성은 전혀 없다. 한국에서 세금 산정 시 중요하게 여기는 고가 주택 기준도 없다.
국내 2주택자가 보유한 주택을 팔 때도 높은 양도소득세율이 적용된다. 내년 6월 1일 양도분부터 보유 기간이 1년 미만이면 양도세율이 70%, 1년 이상~2년 미만은 60%다. 2년 이상 보유했으면 보유·거주 기간에 따라 26~62% 세율을 적용받는다. 2주택자가 10억원의 양도차익이 생겼다면 보유 기간이 1년 미만인 경우 7억원, 15년 이상 보유한 경우에도 5억8300만원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